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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방

라지카트 간디를 추모하기 위한 공원과 호텔

라지카트


간디 기념 박물관은 인도 건국의 아버지인 간디에 관한 자료, 유품,사진,도서가 전시되어 있으며

특히 항상 민중에 둘러쌓여 있는 때로는 고독하고, 고뇌하는 간디의 표정이 인상적이며,최후의 순간에

입고 있던 검소한 의복이 진한 감동을 준다 이곳에서 북쪽으로는 네루 집안의 3대(네루,선저아 건다,인드라 간디)

화장터인 샨티바나가 있으며 더 북쪽으로는 제 2대 수상의 화장터인 비자이카트가있다.





마하트마 K.간디

비폭력 불복종 평화운동의 성자. 인도 시인 타고르가 지어준 ‘마하트마 간디’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마하트마’는 ‘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이다.


인도 서부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법학을 공부하여 변호사가 되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던 중 백인들에게 차별당하는 동족의 실상을 목격하고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운동을 일으켜 여러 차례 투옥된다.


이렇게 정치운동가의 길에 접어든 간디는 인도인이 받는 차별대우의 현실을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는 활동을 계속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이 인도 독립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그에 저항하는 인도인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자, 간디는 영국 상품 불매, 납세 거부, 공직 사퇴 등 불복종 운동을 벌인다.


연이은 투옥 속에서도 그는 평화적인 방식으로 독립운동을 이어나간다.

인도 독립 후, 뉴델리에서 열린 저녁 기도회에 참석했던 간디는 힌두교 급진주의자의 총에 맞아 숨을 거둔다.

1948년 1월 30일, 그의 나이는 79세였다.


간디는 한평생 성실한 힌두교인으로 살고자 끊임없이 노력했다.

자기 손으로 노동하여 자기 먹을 것을 마련하는 삶, 정말 필요한 것 말고는

더 이상 바라지 않는 삶, 진실을 향해 쉼 없이 투신하는 삶을 사는 것이 그의 이상이었다.




라지카트 입구는 공원처럼 잘 꾸며져 있다.입구를 지나 잘 정리된 잔디를 지나

10분정도 걸어가면,마하트마 간디의 화장터가 나온다.

1948년 1월30일에 극우파 힌두 청년에게 암살당한 간디의 유해를 화장한 곳으로 중앙에는

검은색 대리석에 그 중앙에는 간디가 남긴 마지막말이라는 헤이 람(오 신이여!)가 새겨져 있다.

그 앞에는 향을 놓을수있는 단을 마련해 놓고있다 관광객은 들어갈 수 없다.


간디 화장터는 생화꽃으로 놓여있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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